‘공부는 왜 해야 하나요?’ 어느 날 자녀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부모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억지로 아이를 책상 앞에 앉히긴 했는데 ‘언제까지 실랑이해야 하나’ 싶었던 양육자도 많을 겁니다.

hello! Parents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와 진행하는 ‘공부력(力) 진단’ 칼럼, 이번 편에선 아이가 공부할 때 생기는 감정에 대해 집중 조명합니다. 감정은 학습에서 공부 머리, 즉 인지능력 못지않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학습 동기에서부터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에 이르기까지, 감정이 관여합니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가 공부 감정의 힘에 대해 파헤칩니다.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언합니다.

지난 9년간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 진료를 보며 민우 같은 아이와 양육자를 수없이 만났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사교육 로드맵을 짜고 자녀 학습을 관리하는 매니저 역할에 누구보다 열성적인 양육자들이었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바로 아이의 공부 감정을 다치게 한 겁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놓고 다그치다 보니 아이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이렇게 공부 감정이 다친 아이들은 결국 학업에서 더 멀어지고, 양육자와의 관계도 틀어지고 맙니다.

아이의 학습 진도와 스케줄은 꿰뚫어도, 아이가 공부할 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세세히 아는 양육자는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공부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런 감정이 다시 공부에 큰 영향을 미치고요. 학습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자녀의 감정 조절 능력을 길러주는 데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뇌 발달상 청소년은 감정의 기복이 크고 충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하려면 당장 놀고 싶은 충동을 참고 자신의 행동을 조절해야겠죠. 뇌에선 전두엽이 이런 조절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런데 전두엽은 청소년기에 들어서 발달이 왕성해집니다. 반면에 감정, 중독 행동과 관련된 뇌인 변연계-보상회로는 전두엽보다 발달이 빠르게 이뤄지죠. 이런 이유로 청소년은,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은 감정이나 충동을 억제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미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학습량이 크게 늘고 내용도 어려워집니다. 또래와의 사회적 소통도 한층 복잡해지면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하고요.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건 어른의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공부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들이 생겨나는 걸까요? 독일 교육학자 페크런 (Pekrun)이 정리한 ‘학습 감정’의 개념을 살펴보겠습니다. 페크런은 학습 감정을 아래와 같은 네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공부할 때 생기는 이런 감정들을 파악하고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은 지능지수(IQ), 집중력 같은 인지능력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감정 조절을 잘해야 공부도 잘할 수 있습니다. 학습자의 감정 기복이 심하면 공부 동기와 집중력이 떨어지고 학습 속도도 떨어집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정 조절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일수록 정보 수용력과 문제해결능력, 사회성이 고르게 낮게 나타났습니다.

학업에 있어서 감정의 중요성은 ‘감정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란 개념으로도 대중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이 쓴 책을 통해 대중화된 개념이죠. 감정 지능이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잘 인식하고 여러 종류의 감정을 잘 변별해 이를 토대로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감정 지능이 높을수록 기본적으로 학습과 관련된 부정적, 긍정적 감정을 잘 조절합니다. 선생님, 또래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 자존감도 높아지죠. 자신과 타인에 대한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인문학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큽니다.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의 비밀

학습 동기는 꾸준히 공부를 해나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입니다. 대체로 초등학교 때까지 아이들은 외재적 동기로 공부합니다. 용돈, 장난감과 같은 보상을 얻기 위해 또는 부모나 선생님, 친구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요. 하지만 이런 외재적 동기의 유효 기간은 길지 않습니다.

중·고등학생 시기가 되면 내재적 동기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집니다. 본인이 하는 일에 재미나 의미를 느껴 스스로 열심히 하는 겁니다. 학업 난이도나 학습량이 늘어나서 웬만한 노력으로는 칭찬이나 인정을 받기 힘들어지기 때문이죠. 자아정체성, 독립심이 커지면서 인생이나 공부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기도 합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나름대로 답을 찾으려 하죠. 따라서 청소년기에 부모가 아이 공부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관여한다면 오히려 학습 동기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관리’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학습과 관련된 모든 걸 챙겨주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학원에서 아이 수준에 맞게 커리큘럼을 짜주고, 숙제도 내주고, 시험 오답 노트까지 일일이 챙겨준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선 이런 철저한 관리가 오히려 공부의 흥미와 동기를 떨어뜨리는 독이 되기도 합니다. 자율성을 침해받는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 스스로 공부하려는 마음을 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학업 효능감(학업적 자기 효능감)’을 키워줘야 합니다. 학업 효능감이란 스스로 잘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알아내서 직접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쉽게 ‘공부 자신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신감이 높을수록 학습 동기가 높아지고, 어려운 과제도 도전하는 과제집착력이 강해져 학습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게 됩니다.

공부 자신감을 높이려면 학습 난이도를 점검해 보세요. 아이 스스로 공부가 잘한다고 느낄 때 가장 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옆집 아이를 따라 선행학습을 하거나 진도를 빼는 데 몰두해선 안 되는 이유죠. 내 아이가 성취감을 느낄 만한, 자기 실력보다 약간 어렵지만 도전해 볼 만한 문제들을 제공하는 게 좋습니다. 너무 어려운 과제는 불안이 올라가 의욕을 잃고 포기하게 되고, 너무 쉬운 문제는 지루해하기 때문이죠. 아이가 어느 수준에서 도전 의식을 갖는지, 반대로 의욕을 잃는지 파악해 보세요. 작은 성공 경험이 쌓이다 보면 공부 자신감이 향상될 수 있습니다.

공부의 의의를 일깨워 줄 필요도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는 과정에 성실성과 끈기가 키워진다는 걸 알려주세요. 이렇게 키운 힘이 앞으로 인생에서 난관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죠. ‘어쩔 수 없이 한다’가 아니라 ‘내 인생을 원하는 대로 의미 있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생각할 수 있게 대화를 나눠보세요. 자율성을 지지하는 환경일 때 아이는 공부에 대해 강한 내재 동기를 갖게 됩니다.

성적에 연연하거나 대학 진학 등의 목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금물입니다. 학업 성취를 높이려다 오히려 악영향만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적 걱정 때문에 시험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혹여 성적을 나쁘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심한 좌절과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아이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달성했을 때의 뿌듯함과 성취감을 경험하게 해주세요. 이런 경험은 성적과 관계없이 아이 성장이란 관점에서 더없이 중요합니다. 자율성과 실행 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죠. 만약 아이가 공부에 관심이 없다면 운동이나 예술 등의 분야에서 관심이 있는 활동을 꾸준히 하게 하세요.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릴 때까지 뭐든 해본 아이는 무언가를 잘하는 데 필요한 인내심, 감정 관리, 대인 관계, 회복 탄력성, 집요함 등 심리적인 자원을 풍부하게 가꿀 수 있습니다.

📌도전하는 아이를 만드는 칭찬법

마음이 편해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깁니다. 숙제하라고 아이를 닦달하는 것보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공부에 훨씬 득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의 공부 정서를 보살피려면 양육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육자의 역할이 달라져야 해요. 자녀의 학습 매니저가 아니라 안전 기지가 돼야 합니다. 안전 기지는 무슨 일이 있을 때 도망쳐서 숨을 수 있는 장소를 말하죠. 집 밖에서 여러 도전을 하고 문제 상황에 직면했던 아이가 돌아와 쉴 수 있는 곳, 혹여 실패해 상처를 입더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이가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는 내 편”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하는 이야기에 공감해 주고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해 보세요. 그래야 아이가 힘든 상황에 닥칠 때 부모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적절한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자기감정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감정을 조절하는 힘도 기를 수 있습니다. 그런 힘이 있어야 입시 스트레스가 본격화되는 시기에도 불안 같은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고요.

칭찬할 때는 결과가 아니라 노력과 과정을 칭찬하세요. 피드백은 학습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소아청소년기는 특히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과 인정에 민감한 시기입니다. 어떻게 칭찬하느냐에 따라 노력이나 결과를 대하는 아이의 태도와 감정이 달라집니다. ‘시험 잘 봤네!’라고 칭찬하기보다 ‘이렇게 해 낸 것을 보니 네가 정말 많이 노력했구나’라고 말해주세요. 노력을 칭찬받은 아이는 보다 적극적으로 어려운 문제에 도전합니다. 실패하더라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그 경험을 배움의 기회로 삼고요.

또래 관계도 유심히 살펴주세요. 아이는 친구와의 사소한 갈등으로 어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다 공부를 놓아 버리기도 하죠. 아이의 공감 능력, 의사 표현 능력 등 대인 관계 능력에 어려움은 없는지, 또래 관계는 원만한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인간은 어려움을 통해 성장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는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공부하는 과정을 묵묵히 잘 겪어낸다면 성적과 관계없이 보다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내심, 집요함, 회복 탄력성 같은 심리적 자원을 키워나가기 때문이죠.

-중앙일보 Hello parents 에서 발췌-